말레이시아 국제학교 선택의 실패를 경험하다.
아이 데리고 말레이시아 온 지 3년이 지났다.
현재 우리 딸은 두 번째 학교를 다니고 있고
첫 번째 학교는.... 실패했다.
정말 힘겹게 알아보고, 정성 들여 선택했던 첫 번째 학교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 학교가 무작정 나쁜 학교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우리 딸한테는 좋지 않은 학교였다.
블로그 첫 글에 말했지만, 나는 이 블로그에 찐 정보도 담겠지만, 눈치 안 보고 실상도 쓸 거다.
우리 딸이 비싼 등록금을 날린 첫 번째 학교는
수방자야에 있는 썬웨이 국제학교였다.
준비과정부터 입학, 그리고 퇴교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자면...
썬웨이 국제학교는 말레이시아의 대기업, 썬웨이 그룹이 운영하는 사학법인의 학교였다.
최고의 시설, 최고의 규모, 캐나다 온타리오 커리큘럼, 좋은 위치 등등 장점이 너무 많은 학교였다.
우리 부부는 치밀하게 학교들의 데이터를 정리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모든 조건을 다 따져봐도 썬웨이 국제학교만 한 곳은 없었다.
아주 돈을 많이 쓰고 싶지도 않았고, 당시에는 1년에 150만 원가량 프로모션 가격으로 할인도 해줬다.
원래는 세컨더리 밖에 없었던 썬웨이 국제학교에 프라이머리 과정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1주일 정도 고민후 바로 결정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얼마나 다른 사람보다 결정이 빨랐냐면, 한국인 아이로는 처음으로 썬웨이에 등록한 아이가 우리 딸이었어서
차트에 제일 앞에 우리 딸 이름이 오랫동안 보였다고, 추후에 학교스텝에게 들었었다.
썬웨이 국제학교의 최고 장점은 이제 막 생긴 최신식 시설 + 완벽한 위치였다.
한국인 엄마아빠에게 좋은 이미지인 캐나다국제학교의 커리큘럼을 이 정도 가격에 다닐 수 있다는 것에
잘 찾아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입학 3달 전 말레이시아에 입국한 우리 가족은
썬웨이 국제학교에 입학하기 전
몽키아라의 에어비앤비를 단기 렌트해서 거주했다.
그리고 163몰 근처에 초등영어학원을 다니며 영어환경에 노출을 시작했었다.
한국에서도 영어학원을 다녔지만.... 영어유치원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영~~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지고 말레이시아에 왔었다.
몇 달 후에 국제학교에 던져질 아이를 생각해서 꽤 비싼 돈을 주고 영어학원을 다녔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니지 말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 도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 입학시즌이 다가왔고
썬웨이 국제학교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우리 부부는
넓고 깨끗한 시설에 귀엽고 이쁜 교복 입은 딸을 보며 흐뭇해했다.
( 한국에서 1학년을 마치고 온 우리 딸은 캐나다제 학교이기에 바로 2학년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조건에 가격대비 시설은 우리에게만 합격한 것이 아니었다.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한국 애들이 많았다.
사실.... 어떤 의미로는 기피할 요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개의치 않았다.
한 반에 한국애들이 6명이 있었다.
남들은 그 부분을 엄청 불쾌해했다.
아이들이 한국어 쓰게 되면, 영어 실력이 늘지 않을 거라고 걱정했었다.
6명 있나..... 3명 있나... 그게 그거 아닌가?
2명이래도 지들끼리 친하면 한국어 할 텐데?
뭐 이렇게 나름 정신승리를 했었던 것 같다.
딸의 입학 시즌은 분주했다.
준비할 것도 많았고, 학교에서는 하루에 몇 통씩 공지 메일이 오곤 했다.
100% 원어민 학교하고 했던가?
역시 우리 딸아이 담임 선생님은 블론드헤어에 캐나다 분이셨다.
( 몇 달 후 이 여자 때문에 퇴교를 결심하게 될 줄 몰랐다. )
그냥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금발의 담임선생님은 이상한 안심을 주었다.
동남아 국제학교 준비를 하는 학부모들이 걱정하는 발음? 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여지없이 북미식 발음을 구사하시는 분이었다.
( 그래서 훗날 학부모 상담 시 참 소통이 어려웠다.)
처음 3~4달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만족? 불만족? 을 체크하기에는... 그냥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학교에 불만을 가질 포인트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내렸지만
우리 한국학부모들은 착하게? 기다려줬다.
방과 후 수업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수영수업도 안 했다.
아이들 식사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고
다른 학교들처럼 재밌는 행사들도 하지 않았다.
어떤 학교는 승마를 하고, 어떤 학교는 여행도 가고, 어떤 학교는 요리, 오케스트라, 뮤지컬도 한다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썬웨이 국제학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스텝들은 우왕좌왕했고, 엄마들 가디언 비자도 제때 안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싱가포르이나 태국의 국경을 넘기도 했다.
그냥 시간을 때우는 느낌이 너무 강했고, 우리 딸이 배워오는 건 없다고 판단했다.
이게 무슨 국제학교야?
라는 생각이 간헐적으로 들었지만 꾹 참고 2년만 다니려고 했다.
그 사이 우리 딸은 일본인 친구도 생기고, 한국인 친구도 여럿 생기고
말레이시아 라이프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6개월도 안 지났을 무렵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이 학교에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담임선생님이 우리 딸아이를 미워했었다.
아~ 우리 딸이 문제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영어가 부족한 우리 딸이 수업에 못 쫓아갔던 것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반 모든 엄마들이 그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었다.
그냥 짧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가 상상하는 저학년 선생님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이뻐하지 않았다.
예민했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지랄 맞았다.
내년 되면 다른 선생님 반이 될 테니까 기다려볼까?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러기엔 학교가 너무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좋은 선생님들은 갑자기 그만두기도 했고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는 공사한다고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으며
축구수업 취소~ 수영수업 취소~ 무용수업 취소~ 맨날 이런 공지만 받았다.
우리 딸은 학교를 싫어하게 되었었다.
그 이유는 시설도 아니었고, 커리큘럼도 아니었고, 친구들과 트러블도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의 지랄 맞음 때문이었다.
국제학교 전학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우린 행복하러 왔고, 우리 딸에게 행복한 국제학교 라이프를 만들어줄 책임이 있었다.
캐나다 학제였기 때문에 2학기로 이루어진 썬웨이 국제학교의 1학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불만족의 날들이었다.
1학기가 끝나고 방학기간 동안, 친한 아이 엄마아빠와 함께 말레이시아에 있는 소문 좋은 학교들의
오픈데이 ( 홍보행사 )를 찾아다녔다.
이튼, 킹슬리, 킹헨리, 가든, 헬프, KDU 등등 많이도 다녔다.
그리고 학교선택을 마치고 전학을 결심했다.
썬웨이 측에도 전학 간다고 미리 말해놨다.
( 국제학교는 한 학기 전에 말해야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
그리고 미련 없이 하반기 한 학기를 썬웨이에서 더 다녔다.
2학년 과정은 다 끝낸 거다.
1학기만 끝내고 나가고 싶었지만, 보증금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 학년을 다 채웠다.
그렇게 우리 딸의 초등학교 2학년은 썬웨이 국제학교와 함께 했다.
우리 딸은 그때를 기억하면 좋은 친구들 빼고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 그때 그 친구들? 현재 90% 는 모두 학교를 옮겼다.)
2학년을 그렇게 끝내고
엄마 아빠가 정성 들여 알아본 두 번째 학교에 입학했다.
영국제 학교여서 1년에 3학기를 지낸다.
캐나다제에서 영국제로 옮겨서 2학년이 -> 4학년이 되었다.
우리 딸 인생에 초등3학년은 없이 점프해 버렸다.
그렇게 우리 딸은 지금 다니고 있는
코타 다만 사라에 있는 HELP 헬프 인터내셔널 스쿨을 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잘 다니고 있냐고요?
우리 딸은 언제나 안아주는 27살 런던출신 흑인 담임 선생님을 만났고
그 선생님은 학기 중간에 들어온 우리 딸을 위해서 정말 많은 신경을 써주셨다
썬웨이에서 우리 딸은 왜 그거밖에 못하니?라는 소리를 들으며 다녔다.
하지만 헬프에서는 잘했어! 더 잘할 거야! 잘하고 있어! 소리를 들으며 다닌다 한다.
아프리칸계 영국인인 그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긴다.
손을 잡고 허리를 감고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두 학기 동안 영어도 얼마나 늘었는지 모른다.
발전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우리 아이만 이쁨을 받는 건 아니었다.
반 아이들 모두가 선생님을 사랑했고
선생님도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했다.
축구대회에 나간 우리 딸이 1cm가량 까져서 피가 난적이 있었는데
아빠엄마인 우리가 있었음에도
담임선생님은 몇백 미터 땡볕을 뛰어가서 아이 종아리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걸 봤다.
고마워요. 미스 타마라 선생님.
우리 아이는 강해졌고,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학교에 데려가면 언제나 웃고, 친구들과 잔디밭을 구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아빠 떨어져서 친구들과 바닷가로 1박 2일 수학여행도 다녀오고
학교 걸스 축구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방과 후 요리클래스에서 엉망진창 케이크도 만들어오고
3D 프린터로 삐뚤삐뚤 키링도 만들어온다.
학교대표로 육상대회에 나가서 메달도 3개나 받았다.
뮤지컬 연습도 하고 있고, 케이팝 댄스 동아리도 가입하고 싶어 한다.
점심 먹고 베스트프렌드와 나무밑에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하고
같은 반에 네덜란드 친구, 일본 친구, 중국 친구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 한다.
학교 옮기길 잘했다.
썬웨이도 우리 딸 다녔을 때와 달리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그래도 우리 딸이 진짜 행복해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준 것 같아서
참 뿌듯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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